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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SSC 나폴리 FC 경기일정 및 김민재 선수 축구 정보

by Uba 2023. 2. 23.

 

 

나폴리(2)

 

 

나폴리는 세계 3대 미항으로 불리는 로마, 밀라노에 이어 이탈리아 세 번째 규모를 가진 도시이다.

 

이탈리아가 통일되기 전까지 거의 천 년 동안 북이탈리아와는 다른 역사를 가진 남이탈리아의 정치 중심지였다.

 

나폴리는 여전히 지중해에 이르는 항구 도시이고 영어로 네이플스 또는 네이플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서도 유명하지만 요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프로 축구 클럽팀 SSC 나폴리가 더 화제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김민재 선수가 입단하여 맹활약을 하고 있는 팀이기 때문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 프랑크 푸르트와 경기에서 2-0 승리를 가져왔고, 2차전은 3/16일 예정이다. 

 

SSC 나폴리 축구 클럽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지금부터 소개해보려 한다.

 

 

 

 

 

1. SSC 나폴리 축구 클럽 창단 배경은? 

 

나폴리

 

 

이탈리아 나폴리를 연고로 하는 프로 축구 클럽이다. 

공식 명칭은 소시에타 스포르티바 칼초 나폴리로, 흔히 S.S.C. 나폴리로 불린다.

 

AS 로마와 함께 이탈리아 남부를 대표하는 강팀이다.

 

1905년 이탈리아 서던 리그의 한 팀으로 시작하였고, 1926년 당시 구단주였던 조르조 아스카렐리에 의해 AC 나폴리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때 조르지오 아스카렐리가 폭격을 당해 파괴되었고, 1959년부터는 현재의 홈구장인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가 사용되었다.

 

1964년 아소시아시오네 칼초 나폴리에서 소시에 타 스포르티바 칼초 나폴리로 바꾸었다.

 

 

 

 

2. SSC 나폴리 역사 

 

 

전성기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1960년대 디노 조프, 호세 알타 피니, 오마르 시보리.

두 번째는 마라도나로 대표되는 1980년대 중후반.

세 번째는 2010년대 카바니, 함식, 라바지에서 메르텐스, 케이혼, 인시녜 삼 격 편대 시절이다.

 

 

 

1980년대 역사상 리그 첫 우승! 

 

나폴리(3)

 

1980년대 초반까지, 나폴리는 리그에서 뤼트 크롤의 활약으로 3위를 차지하는 꽤 경쟁력 있는 팀이었으나, 1984년에 강등을 1점 차로 피하면서 성적이 상당히 떨어졌다.

 

팀의 핵심인 크롤의 노화는 결국 1984년 6월 30일 FC 바르셀로나에서 디에고 마라도나를 영입하면서 이적 기록을 깼다.

 

게다가, 치로 페라라와 살바토레 바그니의 합류로, 그들은 점차 강력한 스쿼드를 구축했다.

 

선수단의 강화는 효과가 있었고, 1987년 5월, 그는 역사상 첫 리그 우승을 거두었다. 디에고 마라도나는 리그 최고의 선수로 등극했고, 단순한 축구인이 아닌 나폴리의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아이콘이 됐다.

 

 

1990 ~ 2000년대 몰락과 부활!

 

나폴리(4)

 

1991년 AS 바리와의 경기 후 실시된 도핑 테스트에서, 마라도나는 코카인 양성 반응을 보여 15개월간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1991-92 시즌, 나폴리는 잔프랑코 졸라의 활약에 힘입어 마라도나 없이 4위를 차지했지만, 마라도나는 결국 나폴리를 떠났다.


마라도나가 떠난 나폴리는 더 이상 우승을 바라볼 힘이 없어 중위권에 머물게 됐다.


여기에 펠라이노 나폴리 회장이 정치권 스캔들에 연루돼 나폴리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빚을 갚기 위해 잔프랑코 졸라, 파비오 칸나바로, 치로 페라라 등 주요 선수들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폴리는 1997-98 시즌에 단 2승 만을 거두었고, 승점 14점의 하위권으로 강등되었다.

 

유명한 영화제작자이자 나폴리의 오랜 팬인 아우렐리오 데 라우덴티스가 3900만 유로에 나폴리를 인수하면서 대대적인 개혁과 투자가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팬들에게 5년 안에 나폴리를 1부 리그로 만들고, 5년 안에 나폴리를 경쟁적인 팀으로 만들 것을 약속하였다. 이에 팬들은 5만여 명을 동원해 세리에 C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다.

 

그는 첫 약속을 3년 만에 달성시켰는데, 2007년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복귀시켰다.

 

카바니는 2010-11 시즌 총 33골을 넣으며 함식과 더불어 세리에 올해의 팀에 선정되며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거듭났다.

 

 

2010년도 이후 세리에 A 강호로 자리 잡다! 

 

나폴리(5)

 

2011-12 시즌은 챔피언스 리그에서 나폴리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시즌이었다. 

죽음의 조에 속했지만 맨시티를 탈락시키면서 3승 2 무 1패로 16강에 당당히 진출했다.

이후 나폴리는 2012-13 시즌 리그 준우승, 2013-14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등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세리에 A의 강호로 다시금 자리 잡았다.

 

 

 

3. SSC 나폴리 기록

 

 

1) 시즌별 팀 성적

 

나폴리(6)

 

 

2) 최다 출전 선수 기록

 

 

나폴리(7)

 

 

3) 최다 골 선수 기록

 

 

나폴리(8)

 

 

 

4.  레전드 등번호 영구결번 지정

 

 

나폴리(9)

 

 

전설적인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의 등번호 10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나폴리를 화려하게 꽃을 피우게 한 마라도나는 나폴리 인들의 우상이 됐다. 

축구를 넘어 문화, 사회적으로 최고의 인물로 자리 잡으며 ‘나폴리의 신’으로까지 불렸다.

 

이탈리아 세리에 A SSC 나폴리는 현재 10번을 달고 뛰는 선수가 없다. 원래 10번을 단 선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폴리에서 10번은 마라도나 이후에 팀에서 결번 처리했기 때문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역사상 등번호 10번이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나폴리(12)

 

 

축구에서 유니폼 번호 '10'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선수들이 가장 입고 싶은 '로맨스'다. 

 

10번은 팀 에이스에게만 주어지는 번호이다. 그건 어떤 공식 때문이 아니다.

 

'축구의 제왕' 펠레가 10번을 달고 뛰면서 습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펠레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부터 1970년 멕시코 월드컵까지 브라질의 슈퍼스타였다.

 

그가 세계 축구 역사상 가장 빛나는 신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 10은 최고의 영예를 나타내는 숫자가 되었다.

1970년대 펠레가 은퇴한 이후 10번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의 단골 숫자였다. 

 

나폴리(11)

 

우선 네이마르, 히바우두, 호나우지뉴, 카카 등이 브라질 대표팀으로부터 등번호 10번을 물려받았다. 

 

'축구 신동'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 독일의 로타르 마테우스,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이탈리아의 델 피에로가 10번으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세계적인 프로구단에서도 10번은 팀원들이 신뢰하는 숫자다. 

 

보통 공격형 미드필더들은 10번을 차고 뛰어난 경기력과 골 결정력으로 팀을 이끈다. 축

 

구팬들이 잘 모르는 팀 경기를 볼 때 10번을 먼저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